경제·투자

수주는 계측선인데 주가는 전투함을 본다 — 3조 원 계약과 1600조 시장 사이 60년 된 벽

A shipyard gantry crane lifting a large curved steel hull block above a dry dock

수주 소식 한 줄이 방산·조선주를 다시 흔들었다. 한화 필리조선소가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의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선(MRIV) 2척을 20억 달러, 약 3조 원 규모로 따냈다. 헤드라인은 화려하지만 이 배는 전투함이 아니라 시험 지원선이다. 진짜 판이 걸린 전투함 물량은 아직 정보 요청서(RFI) 단계에 머물러 있고, 그 앞에는 60년 된 미국 법의 벽이 서 있음. 오늘은 계약서에 실제로 찍힌 숫자와 시장이 기대하는 숫자 사이의 거리를 뜯어본다.

계약서에 실제로 찍힌 숫자

먼저 확정된 사실부터 정리한다.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가 미 선박관리업체 토트 서비스(TOTE Services)와 컨소시엄을 이뤄 MDA의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선 인도 업체로 선정됐다. 필리조선소가 선박 건조를 총괄하고, 토트 서비스가 건조 관리자(VCM) 역할을 맡음. 이 배는 미사일 비행시험 때 궤적을 추적하고 원격 측정 자료를 모아 통신·시험 결과를 분석하는 지원선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 본토 방어용으로 추진하는 미사일 요격 체계 ‘골든돔’의 시험을 뒷받침하는 인프라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붙었다.

배경을 알면 이 수주의 무게가 달라진다. 한화는 2024년 12월 노르웨이 아커로부터 필리조선소를 약 1억 달러, 원화로 1400억 원가량에 인수했다. 한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사들인 최초의 사례임. 지분은 한화시스템이 60%, 한화오션이 40%를 나눠 가졌다. 필리조선소는 1997년 미 해군 필라델피아 조선소 부지에 세워진 상선 중심 조선소였는데, 한화는 여기에 인수 금액의 50배에 달하는 7조 원 규모의 현대화 투자를 예고했다. 이번 계측선 수주는 그 거점이 군용 발주를 처음으로 받아 낸 장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계약 규모와 일정을 숫자로 분해하면 다음과 같다.

항목 내용
발주처 미 미사일방어청(MDA)
건조 물량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선 2척
사업 규모 약 20억 달러 (원화 약 3조 원)
1번함 인도 2030년 예정
필리조선소 인수 2024년 12월 · 약 1억 달러 (한화시스템 60%·한화오션 40%)
선박 성격 전투함 아님 (시험·계측 지원선)

자료: 미 미사일방어청 계약 발표 및 국내 복수 매체 종합. 규모는 업계 추정치이며 계약 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왜 한국 조선소에 손을 벌리나

세계 최강 해군을 가진 나라가 왜 남의 조선소를 찾을까. 답은 미국 조선업의 처참한 현실에 있다. 전 세계 선박 건조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04%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상선 건조 능력이 붕괴한 상태임. 건조비는 한국의 여러 배에 이르고 기간도 훨씬 길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한국이 이지스함을 2~3년 만에 뽑아내는 동안 미국의 알레이버크급 이지스함은 평균 7년가량이 걸린다는 비교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안보 시계가 겹친다. 미 해군 함정은 2026년 현재 290척 안팎인데, 중국은 2030년까지 400척 중반대로 함대를 불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목표한 381척 달성 시점은 2054년이다. 숫자만 보면 미국이 쫓기는 형국임. 자국 조선소만으로는 이 격차를 메울 수 없다는 계산이 한국·일본 같은 동맹 조선 강국에 문을 여는 배경이 됐다. 실제로 정비·보수(MRO) 시장만 연 20조 원 규모로 추정되고, 한화오션은 이미 미 해군 MRO 계약 3건을 따내 부산·진해에서 함정을 손보고 있다. 계측선 수주는 이 큰 흐름의 한 조각인 셈이다.

이 공백이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는 점도 짚어 둘 만하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상선 시장을 아시아 조선소에 내주면서 숙련 인력과 설비 기반이 함께 얇아졌다. 조선소가 줄면 용접공과 설계 인력이 떠나고, 인력이 떠나면 남은 조선소의 생산성이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음. 군함은 상선과 달리 안보상 자국 건조가 원칙이라 이 공백을 외부에서 메우기도 어려웠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 조선 강국에 문을 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이 구조적 공동화가 단기간에 회복되기 힘들다는 현실 인식이 깔린 결정으로 읽힌다.

시장이 진짜 보는 건 이 계약이 아니다

주가와 여론이 반응한 대상은 계측선 2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놓인 훨씬 큰 그림이다. 이른바 ‘마스가(MASGA)’로 불리는 한·미 조선 협력이 그것임. 미 국방부는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전투함 관련 정보 요청서(RFI)를 보냈고, 미 해군은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세 곳에 급유함 건조 RFI를 발송했다. 올해 4월에는 한화 방산 미국 법인과 삼성중공업이 나란히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개념 설계 계약을 따내며 ‘MRO에서 신조로’라는 방향을 예고하기도 했다.

상징적 장면도 있었다. 지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 군함 10척을 한국에서 빠르게 건조해 줄 수 있느냐”고 직접 타진했고, 이 대통령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해군이 외국 조선소에 전투함 건조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물은 건 1922년 영국에서 건조된 순양함이 마지막이었으니, 104년 만의 일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다만 여기서 짚어야 할 구분이 있다. RFI는 계약이 아니라 “역량이 있느냐”를 묻는 사전 조사 단계다. 계측선 계약은 도장을 찍은 확정 물량이지만, 시장을 달군 전투함 물량은 아직 서류 왕복 단계에 있음. 헤드라인 하나에 두 가지 층위가 섞여 있는 셈이다.

경쟁 구도도 단순하지 않다. 국내에서는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빅3’에 HJ중공업까지 미 함정 시장을 겨냥하고 있고, 밖으로는 일본 조선소들이 같은 MRO·군수 지원 물량을 놓고 미국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 여러 후보 중 가장 앞선 카드에 가깝다는 뜻임. 결국 확정 발주가 나올 때마다 어느 나라, 어느 조선소가 가져가느냐가 그때그때 갈리는 구조라, ‘한국 조선업 전체의 수혜’라는 뭉뚱그린 서사와 개별 기업의 실제 실적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전투함 앞을 막은 60년 된 미국 법

전투함 물량이 RFI에서 계약으로 넘어가려면 넘어야 할 결정적 장벽이 있다. 미국 법전 10편 8679조, 통칭 ‘번스-톨레프슨 수정안(Byrnes-Tollefson Amendment)’이다. 이 조항은 미군이 쓸 함정의 선체나 상부 구조 같은 주요 부품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금지함. 국내에서는 ‘반스-톨레프슨’으로도 표기되는 바로 그 규정이다.

이 법의 뿌리는 짧지 않다. 첫 번째 조항인 톨레프슨 조항은 1965 회계연도 함정 건조 예산에서, 두 번째인 번스 조항은 1968 회계연도 예산에서 처음 등장했다. 60년 넘게 미 해군 함정 건조를 자국 조선소로 묶어 둔 규정인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국가안보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면제(waiver)를 발동할 수 있고, 이 금지는 해군 함정 등록부(Naval Vessel Register)에 오르는 함정에만 적용된다는 게 미 해군의 해석임. 이 대목이 이번 계측선 수주가 성사된 이유를 설명한다. 시험 계측선은 전투함이 아니어서 이 장벽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선종에 가깝다. MRO나 군수지원함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이지스함 같은 본격 전투함은 이 조항의 정면에 놓여 있어, 의회가 별도의 예외를 열어 주지 않는 한 한국 조선소가 미국 밖에서 선체를 짓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600조 시장이라는 숫자의 산수

기대를 키운 또 하나의 숫자가 ‘1600조 원 시장’이다. 이 숫자의 출처를 따라가면 미 해군의 30년 함정 건조 계획에 닿는다. 미 의회예산국(CBO)이 분석한 2025 회계연도 계획에 따르면, 미 해군은 함대를 2024년 기준 296척에서 2054년 381척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향후 30년간 신조로 364척을 사들이는데, 그중 293척이 전투함이고 71척이 지원·군수함이다.

여기에 드는 돈이 관건이다. CBO는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30년간 매년 평균 약 400억 달러의 신조·건조 예산이 필요하며, 총액은 1조 달러를 넘어선다고 추정했음. 국내에서 회자되는 ‘1600조 원’은 여기에 유지·보수까지 포함한 더 넓은 함정 시장을 추정한 값으로 보인다. 각 숫자는 출처가 다르므로 하나로 단순 합산하기보다 층위를 구분해 읽는 편이 정확하다. 계획의 뼈대를 가로 막대로 비교하면 규모 감이 잡힌다.

미 해군 함대 목표 (척)

2024년 현재 · 296척
2054년 목표 · 381척

향후 30년 신조 계획 구성 (총 364척)

전투함 · 293척
지원·군수함 · 71척

자료: 미 의회예산국(CBO) 2025 회계연도 함정 계획 분석, 미 해군 함정 건조 계획(2026년 5월). 금액은 2024년 달러 기준 추정치이며 실제 예산 편성은 매년 의회 승인에 좌우된다.

반대편에서 보면 — 서사가 앞서갔을 가능성

지금까지의 흐름은 분명 한국 조선업에 우호적이다. 그러나 반대 시각도 함께 저울에 올려야 균형이 잡힌다. 첫째, 확정 계약과 기대 물량이 뒤섞여 한 덩어리로 소비되고 있다. 계측선 3조 원은 실재하지만, 시장을 움직인 전투함·1600조 원 서사는 아직 법·예산·의회라는 세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음. 실제로 중국 쪽에서는 “한국 조선업계가 실질적 이득을 얻기는 어렵다”는 견제성 논평이 나오기도 했다.

둘째, 예산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CBO조차 미 해군이 목표 함대를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매년 수십억 달러를 더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30년짜리 계획은 미국 대통령이 최소 여섯 번 바뀌는 시간축 위에 놓여 있고, 그 사이 예산은 해마다 재조정된다. 셋째, 번스-톨레프슨 조항의 면제나 국방수권법(NDAA) 개정은 미 조선 노조와 자국 산업 보호 정서라는 만만치 않은 정치 변수를 안고 있다. 일부 증권가 리포트는 이 법 개정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역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전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넷째, 현지화라는 조건이 붙는다는 점도 잊기 쉽다. 미국은 안보 물량일수록 미국 내 건조와 미국 인력 고용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화가 필리조선소에 7조 원 규모 현대화를 예고한 것도 이 지점과 무관치 않다. 즉 한국 조선사가 미 함정 물량을 따내더라도 상당 부분은 미국 현지 야드에서, 미국 비용 구조로 지어야 할 수 있다는 뜻임. 국내 조선소의 도크가 곧바로 채워지는 그림과는 결이 다르다. 수주액의 크기와 실제로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의 크기가 반드시 같지 않다는 점은 기대를 계산으로 옮길 때 반드시 감안해야 할 변수다.

그래서 무엇을 지켜봐야 하나

기대와 위험을 함께 놓고 보면, 지금 필요한 건 흥분이 아니라 확인해야 할 이정표 목록이다. 서사의 진위는 결국 다음 관문들이 실제로 열리는지로 판가름 남. 각 항목은 뉴스 헤드라인이 아니라 계약서·법조문·예산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체크포인트 무엇을 확인하나
RFI → 계약 전환 전투함·급유함 정보 요청이 실제 발주로 이어지는지
NDAA 2027 개정 한국 조선소용 국가안보 면제 조항이 명문화되는지
예산 편성 함정 계획이 매년 의회 예산으로 뒷받침되는지
현지 생산 이행 필리조선소의 건조 능력·인도 일정이 계획대로 가는지

계측선 수주는 이 목록의 첫 칸에 작은 표시 하나를 남긴 사건이다. 의미는 있지만, 나머지 칸이 비어 있는 한 큰 그림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안전함. 재료와 실적을 구분하는 습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국면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번에 수주한 배가 전투함인가.
아니다. 미사일 비행시험을 지원하는 계측선이다. 전투 목적이 아니라 시험·측정용 지원선이라 외국 조선소 건조를 막는 규정의 정면에 놓이지 않는다.

Q. 그럼 전투함은 언제 한국에서 짓나.
현재로선 미정이다. 미 국방부의 RFI는 사전 조사 단계이고, 실제 건조까지는 미국 법 개정과 예산 편성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음.

Q. 번스-톨레프슨 조항은 절대 못 넘나.
대통령의 국가안보 면제나 국방수권법 개정으로 예외를 열 수는 있다. 다만 자국 산업 보호 정서가 강해 시간과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Q. ‘1600조 원 시장’은 확정된 숫자인가.
아니다. 미 해군 30년 계획의 건조·유지 예산을 폭넓게 추정한 값으로, 실제 집행은 매년 의회 예산에 따라 달라진다.

Q. 이번 수주가 관련 기업 주가에 어떤 영향을 주나.
단기 심리에는 재료가 될 수 있으나, 확정 물량과 기대 물량을 구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서사만으로 실적이 잡히지는 않는다.

마치며

이번 계측선 수주는 한국 조선업이 미국 방위 산업 공급망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는 신호로 읽힌다. 미국 조선업의 공백이 그만큼 크고, 안보 시계가 그만큼 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 한 발이 곧 전투함 시장 전체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함. 확정된 3조 원과 기대되는 1600조 원 사이에는 60년 된 법과 매년 다시 짜이는 예산이라는 실질적 거리가 놓여 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나 매도를 권하지 않는다. 화려한 헤드라인과 확정된 계약을 구분하고, 위에 정리한 관문들이 실제로 열리는지를 스스로 확인한 뒤 신중하게 판단하길 권한다. 투자 판단의 책임은 언제나 본인에게 있다.

참고 자료

  • 미국 법전 10편 8679조(번스-톨레프슨 조항) — 미 하원 법전·코넬 로스쿨 LII
  • 미 의회예산국(CBO), 2025 회계연도 함정 건조 계획 분석
  • 미 해군 함정 건조 계획(2026년 5월)
  • 미 회계감사원(GAO) B-218497.2, 외국 조선소 건조 적용 해석
  • 미 미사일방어청(MDA) 계측선 계약 발표 및 필리조선소 인수 관련 국내 복수 매체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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