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억 넘는 집을 사면서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은 2억뿐인 시대가 됐다 — 그 빈 자리를 지금 집주인이 직접 채워주기 시작했다.
1. 매물에 이상한 문구가 붙기 시작했다
SBS 보도(2026년 7월 21일)에 따르면 강남구 자곡동의 한 아파트 매물에는 매매가 20억 원 가운데 “6억 원을 집주인이 대출해 준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매수인은 은행 주택담보대출 4억 원과 본인 자금 10억 원으로 잔금을 치르고, 나머지 6억 원은 매도인에게 시중 금리 수준의 이자를 내는 방식으로 갚아나가는 구조다. 이틀 뒤 서울 송파구 잠실의 다른 매물에도 “매도인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새로 올라왔다.
업계에서는 이 방식을 셀러 파이낸싱(seller financing)이라 부른다. 은행이 아니라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개인 간 금융이다. 지난해 시행된 대출 규제로 대출 한도가 큰 폭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잔금을 마련하기 힘든 매수자와 빨리 집을 처분하려는 매도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릴 때 등장하는 거래 방식이다.
얼마 전 지인이 서울 강동구에서 20억 원대 아파트를 알아보다가 비슷한 조건의 매물을 실제로 만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이게 정상적인 거래냐”고 반문했는데, 중개업소에서는 “요즘 이런 조건 붙은 매물이 한둘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대출 규제가 겹겹이 쌓이면서 시장 한쪽에서 조용히 자리 잡아가고 있는 흐름이라는 뜻이다.
2. 대출 한도, 얼마나 줄었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과 금융위원회 자료를 종합하면, 2025년 10월 15일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이후 수도권과 규제지역 12곳(과천·광명·성남 분당·수정·중원·수원 영통·장안·팔달·안양 동안·용인 수지·의왕·하남)에서는 집값 구간별로 주담대 한도가 아래처럼 나뉘었다. 20억 원짜리 자곡동 아파트가 4억 원 한도에 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주택 가격 구간 | 주담대 한도 | 비고 |
|---|---|---|
| 15억 원 이하 | 6억 원 | 기존 한도 유지 |
| 15억 원 초과 ~ 25억 원 이하 | 4억 원 | 자곡동 매물 해당 구간 |
| 25억 원 초과 | 2억 원 | 가장 강한 규제 |
여기에 더해 2주택 이상 보유자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추가 주택을 사거나, 1주택자가 기존 집을 처분하지 않은 채 추가로 집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추가 주택 구입 목적의 주담대 자체가 금지된다. 대출로 집을 늘려가는 경로 자체를 정부가 틀어막은 셈이다.
3. 스트레스 DSR — 금리가 오른 게 아니라 계산법이 바뀌었다
대출 한도가 줄어든 두 번째 이유는 스트레스 DSR이다. 실제 대출금리는 그대로인데, 미래에 금리가 오를 가능성을 미리 반영해 대출 가능 금액을 보수적으로 계산하는 제도다. 2024년 2월 1단계, 2024년 9월 2단계에 이어 2025년 7월 3단계가 시행되며 은행권·2금융권 모두 주담대·신용대출·기타대출 전체에 스트레스 금리가 100% 반영되고 있다.
연소득 1억 원, 30년 만기 변동금리 대출을 기준으로 보면 체감이 분명해진다.
| 구분 | 대출 한도 | 비교 |
|---|---|---|
| 스트레스 DSR 적용 전 | 6억 5,800만 원 | |
| 1단계(2024.2) | 6억 3,000만 원 | |
| 2단계·수도권(2024.9) | 5억 7,400만 원 | |
| 3단계(2025.7~현재) | 5억 5,600만 원 |
같은 소득, 같은 집을 놓고도 대출 시점에 따라 한도가 1억 원 넘게 갈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 10·15 대책 이후 수도권·규제지역 주담대에 한해서는 스트레스 금리 하한선 자체가 1.5%에서 3%로 한 번 더 올라갔다.
4. 전세대출도 이제 DSR에 잡힌다
이번 조치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전세대출이다. 그동안 전세자금대출은 DSR 산정에서 빠져 있었는데, 1주택자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전세로 거주하며 전세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상환분이 DSR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원금은 제외하고 이자 부분만 반영하는 방식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연 소득 5,000만 원인 사람이 전세대출 2억 원을 받으면 DSR이 약 14%포인트, 1억 원을 받으면 약 7.4%포인트 올라간다. 다른 대출을 이미 갖고 있는 1주택자라면 전세 계약을 갱신하거나 새로 얻을 때 예상보다 훨씬 낮은 한도를 통보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위는 우선 1주택자의 수도권·규제지역 전세대출에만 적용하되, 시행 경과를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5. 셀러 파이낸싱, 사실 처음 등장한 방식이 아니다
매도인이 직접 돈을 빌려주는 거래는 과거에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전면 금지됐을 때도 비슷한 방식이 고가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확산한 적이 있다. 금융권 대출만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때마다 매도인이 미지급 매매대금을 담보 삼아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시장 한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셈이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도 있다. 이번에는 15억 초과 전면 금지가 아니라 15억~25억, 25억 초과 구간별로 한도가 세분화됐고, 여기에 스트레스 DSR과 전세대출 DSR까지 겹쳐 있어 규제를 우회할 유인이 훨씬 다층적이라는 점이다.
6. 왜 하필 지금 정치 이슈가 됐나
이 흐름이 논란으로 번진 계기는 따로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분당 양지마을 아파트를 29억 원에 매도하면서 매수인에게 17억 7천만 원 규모의 근저당을 설정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쪽에서는 “갭투자도 투기라며 대출을 규제해 놓고 정작 외상으로 집을 팔았다”고 비판했고, 청와대는 “등기상 내용은 매수자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매매를 완료한 것 자체가 부동산 정상화 의지의 표현”이라는 입장을 냈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이 거래를 셀러 파이낸싱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다만 이 사례가 알려진 뒤 실제 매물 시장에서 “집주인 대출” 조건을 내건 매물과 관련 검색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네이버 데이터랩 기준으로 “집주인 대출·셀러파이낸싱” 검색 비중은 이 보도가 나온 날 최고치를 찍은 뒤에도 일주일 가까이 평소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2026-07-28 기준).
이런 개인 간 주택 금융 자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금리가 급등하거나 은행 문턱이 높아지는 시기마다 매도인이 직접 자금을 대는 거래가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다만 미국은 관련 세제·등기 절차가 오랜 기간 판례로 정리돼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이런 거래를 전제로 한 표준 계약서나 세무 가이드라인이 충분히 자리 잡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 틈을 당사자들의 개별 계약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7. 이 거래, 실제로 안전한가
매수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개인 간 대출은 은행 대출과 달리 표준화된 보호 장치가 없다. 계약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금리·상환 방식·연체 시 처리가 전부 달라진다. 둘째, 매도인이 받는 이자는 비영업대금의 이익으로 분류돼 27.5%(지방소득세 포함) 원천징수 대상이 될 수 있다. 매도인·매수인 모두 세금 신고 의무를 놓치면 가산세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셋째, 근저당권 순위다. 매도인의 근저당이 후순위로 밀리거나 다른 채권자와 얽히면, 매수인이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했을 때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절차가 은행 대출보다 훨씬 복잡해질 수 있다.
결국 셀러 파이낸싱은 “대출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쓰는 방법”이라기보다, 계약서 한 줄 한 줄에 은행이 해주던 역할을 매도인과 매수인이 직접 나눠 떠안는 거래에 가깝다.
실무적으로는 세 가지를 계약서에 명시해 두는 것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꼽힌다. ①원리금 상환 일정과 연체 시 지연이자율 ②근저당권 설정 순위와 말소 조건 ③원금 조기 상환이 가능한지 여부다. 이 세 가지가 빠진 채 구두 약속으로만 진행되는 거래는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매수인·매도인 모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8. 은행 대출과 비교하면 비용은 어느 정도 차이 날까
실제로 숫자를 대입해보면 감이 잡힌다. 아래는 20억 원 아파트를 사면서 부족한 6억 원을 은행 신용대출로 메우는 경우와, 매도인에게 같은 금액을 빌리는 경우를 가정한 예시 비교다. 실제 조건은 개인 신용도와 계약 내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치다.
| 구분 | 가정 금리 | 특징 |
|---|---|---|
| 은행 신용대출(6억 한도 초과 시) | DSR 한도 자체가 막혀 사실상 이용 불가 | |
| 매도인 셀러 파이낸싱 | 시중 금리 수준(협의) |
표에서 보듯 셀러 파이낸싱의 가장 큰 매력은 “금리가 싸다”가 아니라 “은행에서 막힌 한도를 개인 간 계약으로 우회할 수 있다”는 점 자체에 있다. 대신 그 대가로 법적 보호 장치의 상당 부분을 당사자끼리 직접 설계해야 한다.
9. 반대 시각과 장기 전망
이 흐름을 보는 시각은 갈린다. 한쪽에서는 셀러 파이낸싱을 규제가 낳은 부작용, 즉 정책 목표를 무력화하는 우회로로 본다. 대출을 조여도 고가주택 거래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만 바뀐다는 지적이다. 반대쪽에서는 이를 시장이 유동성 경색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본다. 과거 15억 초과 전면 금지 시절에도 시장은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 숨통을 텄고, 규제가 완화되면 이런 거래는 다시 잦아들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두 갈래로 갈린다. 정부가 개인 간 대출까지 규제 대상으로 넓히는 쪽으로 움직이면 셀러 파이낸싱은 지금보다 훨씬 좁은 틈새 거래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대출 총량 관리가 장기 과제로 자리 잡으면, 2030년 즈음에는 고가주택 거래에서 매도인 금융이 하나의 정식 거래 관행으로 자리 잡아 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금 단계에서는 “규제를 피하는 요령”이 아니라 “규제가 만들어낸 새로운 리스크”로 접근하는 게 맞다.
FAQ
Q1. 지금 25억 넘는 집을 사면 대출은 정말 2억까지만 나오나?
수도권·규제지역 기준으로는 그렇다. 15억 이하는 6억, 15억 초과~25억 이하는 4억, 25억 초과는 2억으로 구간이 나뉘어 있다. 지역과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조건이 달라지므로 개별 확인이 필요하다.
Q2. 집주인이 빌려주는 돈, 이자는 어느 정도로 정해지나?
정해진 기준은 없고 계약 당사자끼리 협의해 정한다. 다만 시중 대출금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면 증여세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통상 시중 금리 언저리에서 조율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Q3. 이런 거래가 불법인 건 아닌가?
거래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다만 계약 내용과 신고 방식에 따라 증여세·이자소득세 이슈가 걸릴 수 있어 세무·법률 검토 없이 진행하면 나중에 추징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
Q4. 전세로 살고 있으면 이번 규제와 무관한가?
1주택자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전세대출을 새로 받거나 갱신할 때는 이자상환분이 DSR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무주택 서민의 전세대출은 이번 조치 대상이 아니다.
Q5. 셀러 파이낸싱, 앞으로 계속 늘어날까?
단정하기는 이르다. 과거에도 강한 규제 국면마다 일시적으로 늘었다가 규제가 완화되면 잦아드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다만 이번에는 스트레스 DSR과 전세대출 DSR이 동시에 겹쳐 있어 이전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치며 — 본 글은 매수·매도 추천이 아니다. 대출 규제 국면에서 나타나는 자금조달 방식을 정리한 메모다. 앞서 정리한 코픽스 인상 전 마지막 숫자 분석(관련 글)과 함께 보면 지금 대출 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조여지고 있는지가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 개인 간 대출은 계약서 한 줄이 곧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 영역인 만큼, 본인 자금 계획과 법률·세무 자문에 맞춰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